오늘도 잠은행 대출신청서를 씁니다- 오전엔 보약, 오후엔 독약.

안녕하세요 도리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박사과정의 아침과 잠에 대해서 알려드렸는데요. 이번에는 밤과 잠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아침잠을 조절하는 것도 어렵지만, 밤에 수면패턴을 조절하는 것도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벼락치기를 하느라 몇 주동안 힘들게 만들어놓은 수면습관을 깰 수밖에 없는 일이 생깁니다. 나도 한 번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개고 꼬박꼬박 유산소 운동, 카페인 절제에 야식절제, 각종 수면을 기원하는 의식, 수면에 도움된다는 각종 음식들과 수면보조제... 저는 인공태양(조도 10000lux이상의 빛과 약간의 열을내는 전구, 북반구 고위도에서 우울증과 수면장애 치료법으로 사용) 까지 구매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뼈를 깎는 노력들도, 데드라인앞에서는 속수 무책이죠.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밤에 몇시간 더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음날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잠을 안자는 게 아니라 잠을 빌려오는 거'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나요??? 그리고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 자체가 비합리적인 행위...'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할 껄, 낮에 페이스북이랑 인터넷 서핑 덜할껄, 웹툰좀 덜볼껄'.. 자책하다가 나 자신과 절교하고 싶은 충동에 정신을 차려보면 벌써 23시 40분 입니다. 처음에 정해놓은 데드라인은 이미 하루 이틀 지나가고 오늘밤도 그냥 지나가면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서 또 '잠은행' 대출신청서를 씁니다. 아, 잠은행 대출신청서는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잠은행 대출신청서- 맛있어요!

위의 'Jacobs instant espresso'는 잠은행 대출 신청서 중에서 가장 간편하고 맛도 좋습니다. 특히 인스턴트인데도 뜨거운 물을 부으면 크레마가 살아납니다... 커피라는 게 오전에 마시면 활기를 주는데 낮에 마시면 밤에 잠을 못자고... 밤에 마시면... 좀비가 됩니다.ㅠ 그래서 오전에는 보약, 오후엔 독약 , 밤에는 마약이 되는거죠. 저는 데드라인이 걸리지 않으면 보통 새벽 1시반에서 2시에 잠이 들어 9시-10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좀 더 일찍 일어나 보려고 시도도 봤는데 7시간 이상 못자면 중간에 낮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아서 깨어있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데드라인이 임박했을 때는, 낮에는 불안을 회피하고 있다가, 밤 11시 40분부터 갑자기 초조해져 사리분별을 못하고 저걸 하나 또 까서 타먹네요.

박사과정은 좁은 의미에서 학업과 논문을 수행하는 것인줄 알고 입학했는데, 막상 몇 년 공부를 해보니 '시간관리, 체력관리, 스트레스와 멘탈관리' 모두를 포함하는 거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잘 해보려고 하는데도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제가 선택한 고통이고 제가 선택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노트북을 열고........(블로그를 하고 있네요). 이것만 쓰고 어서 워드 프로세스를 열게요..ㅠ 오늘도 데드라인 압박을 견디고 고군분투 하시는 우리 박사과정 화이팅...(아 눈에서 땀이 나네요..ㅠ;;;;)

마지막으로,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벼락치기하느라 내일 시간을 오늘 땡겨오는 현상'을 '잠은행'이라는 말로 개념화 (Conceptualisation)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알기 쉽게 시각화(Visualisation)해주신 이말년 화백님의 '이말년 씨리즈-잠은행 에피소드들'을 소개합니다. '이말년씨리즈'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 '잠은행' 에피소드는 정말 표현이나 묘사가 기발해서, 생각날 때마다 다시가서 찾아봅니다. 유명한 독일 동화인 모모(MoMo, Michael Ende작)에도 '회색신사들(die Grauen Herren a.k.a. 시간 도둑놈)'이 나오는데, 이말년이 그린 '잠은행'은 한국상황이라 더 실감납니다. 즐겁게 감상하세요.

관련 웹툰: 네이버 이말년씨리즈- 잠은행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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