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리입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근황을 따로 전하기도 어색하네요. 좀 바빴구요. 그렇다고 글 쓸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봐요. 그런데 어제 제가 정말 좋은 행사에 갔다가 좋은 작품을 소개받아서,
이건 진짜 기록으로 남겨야 된다..
는 마음에 부랴부랴 포스팅을 시작해 봅니다.
저는 어제 서대문에 있는 '원앙아리' 라는 곳에서 하는 정월대보름 행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원앙아리는 1965년에 지어진 '원앙여관'을 현재의 주인분이 인수하셔서 카페+코워킹 스페이스+ 루프탑 으로 개조하신 곳인데, 공간의 역사나, 인테리어, 그리고 공기정화기술(!)이 정말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서쪽에서 약속을 잡을때는 이곳에서 만날 것 같은데, 그때 카페를 다시 찍어서 소개해 드릴게요.
어제(2/8일) 이곳에서 정월대보름 달맞이 행사를 했었는데, 싱잉볼 명상(네팔에서 온 싱잉볼Singing Bowl이란 악기를 처음 봤어요), 투덜그라피(욕을 캘리그라피로 써주심;;), 그리고 부럼깨기(이거 정말 얼마만에 해봤는지!) 와 함께, 현재 원앙아리에서 하고있는 전시의 작가님을 모셔서 그림도 보고, 작품 의도도 직접 작가님께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래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고, 도슨트(전시해설) 참여할 수 있으면 꼭 하는 편인데, 무려 작가님(!)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이 바로 Fear & Insight (두려움과 통찰) 입니다.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좋죠?
그런데 제가 이 그림을 포스팅까지 굳이굳이 하고자 한 이유는... 작가님의 제작 동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황두현 작가님와 아내 분은 지방을 방문할 일이 있었고, 작가님이 장시간 운전을 했다고 합니다. 몇 시간 동안 운전을 하면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밤이 되었는데, 아내 분이,
" 해가 지고 달이 떴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운전을 하고 있던 작가님은 무심결에,
"그러네,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네."
라고 동문서답을 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작가님은 왜 내가 '두려울 것이 없다' 라고 말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 시기 작가님은 본인의 작품활동을 하고자, 오랫 동안 다니던 회사(문화재 유지 보수 회사에서 일하셨다고 합니다.)를 그만 두고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거기다 결혼하고, 곧 아이도 태어나고... 사실은 자신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아내의 질문에 대한 동문서답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해서 인지할 수 있게 되신거죠.(이걸 불교에서는 '관(觀)'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자기 밖에서 자기를 보는 거죠.)
그래서, 작가님은 그 날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저 한쌍의 그림 (해와 달)을 작업하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림의 제목이 '일광보살(해), 월광보살(달)' 이었는데, 나중에는 개인적인 체험을 더 강조하고 싶어 Fear & Insight (두려움과 통찰) 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셨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 제목(일광보살 월광보살) 보다는 나중의 제목(두려움과 통찰)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최종 제목이 두 점의 그림을 하나로 엮어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작가님은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아내분이 말했듯이)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일상'속에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겠구나 라고 말하면서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통찰과 용기를 얻으신 게 아닐까요? 동문서답이라기 보다는 우문현답인 것 같네요. 이 작품으로 한국불교미술대전 입선도 하셨다고 합니다. 멋지네요.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와 달을 전통 불화와 탱화을 그릴 때 쓰는 문양을 통해 표현하셨습니다. 탱화작업을 하실때 쓰시는 분채와 안료를 사용하시고, 캔버스 대신 모시위에 작업을 하셨다고 하네요. 작가님이 불교 미술을 전공하셨고, 졸업 후에는 사찰 문화재 (주로 탱화나 단청이겠죠) 를 유지 보수하시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럼 좀 더 가까이에서 볼까요?
처음 카페에 도착했을 때도 그림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작가님께 직접 설명을 들으니 그림이 새롭게 보이고, 뭔가 더 여운이 남더라구요. 제 지금 상황도 작가님이 당시에 처해 있던 불안정한 상황 (고학력 저임금 계약직 노동자..ㅠㅠ)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작가님의 그림이 제 안에 있는 두려움을 느끼게 도와 주고, 그리고 작가님의 개인적 체험 '그러네,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네.' 라는 이야기가 저에게 큰 용기를 주네요.
아, 그리고 이 그림 판매하는 그림입니다.. 시작가는 각 500만원 이래요. 그런데 이미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풍문이;;;
시간이 되시는 분은 원앙아리에 꼭 한 번 방문해 보세요! 그림이 팔리기전에 어서요!!
그럼 또 올게요!
다시 볼 때까지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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