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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시선

[서평]김중혁(2016) 바디무빙

by Doriee 2019. 4. 26.

안녕하세요. 도리입니다. 

 

오늘은 소설가 김중혁(2016)의 에세이 바디무빙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요. 직업이 뭘 읽고 쓰는 거다보니, 쉬는 시간에는 뭘 읽거나 보는 게 싫어집니다. (근데 쓰는 건 또 좋아함. 특히 블.로.그.포.스.팅!) 그런데 김중혁 작가는 제가 너무너무 좋아해서 (한국 소설가 중에 제일 좋아함!) 소설이나 에세이는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입니다. 지금은 김중혁 작가가 티비에도 많이 나오고 (대화의 희열에도 나오고, Btv 영화소개에도 이동진 작가랑 같이 나오더군요..)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지만, 제가 유학가기 전까지만 해도, 김중혁작가는 '김연수 친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도 김중혁작가를 처음 알게된 게, 당시 직장동료와 김연수 작가 이야기를 하다가, 동료가 

김중혁 소설을 꼭 읽어보라고, 정말 좋다고

라고 하는 소리에 영업을 당했죠. 

 

제가 유학가 있는 동안 작가님이 책을 많이 내셨던데, 그 중에 뭘 제일 처음으로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처음으로 고른 책이 ‚바디 무빙‘ 입니다. 돌아와서 첫책으로 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도 돌아오자마자 바디무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거든요….바로바로 수영! 책은 처음에 수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저는 그 순간 느꼈죠..

이런 운명의 데스티니! 나도 수영을 막 시작했는데, 책에 수영이야기 딱 나와..

네.. 개소립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저는 수영장을 한달 개근했는데, 결석한 애들이 더 잘해요… 저는 한쪽구석에서 넉달째 킥판잡고 계시는 어머님과 입수영을 하고 있어요.. 자포자기하면 안되는데 말이죠..ㅠ

 

네, 헛소리 그만하고 바디무빙 서평 시작하겠습니다.

바디무빙
국내도서
저자 : 김중혁
출판 : 문학동네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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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같던 시간이 3차원으로 넓어질 때가 있다. 아득해지고 어질어질하고, 넓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오히려 눈앞에 있는 것들만 뚫어지게 바라보게 된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자세하게 본다. 빗방울이 생각보다 천천히 떨어지고, 바람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고, 계절의 뒷덜미를 붙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주기만 한다면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것,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걸, 꿈도 꾸지 못했던 걸, 포기했던 것을 다시 시작해 볼까. 눈을 들어 바라보면 생각과는 달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모든 게 회전하고 있다.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다. 눈앞에 있는 것들과 멀리 있는 것들을 번갈아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시간 앞에서 담대해질 수 있을까. 주눅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가까이 보고 멀리 보면서 여전히 방법을 찾는 중이다. (283, 에필로그) 

 

책은 짧은 에세이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바디(Body), 무비(Movie), 바디무빙(Body Moving)에 관한 내용입니다. 몸(구체적으로는 신체기관)에 관한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영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디무빙‘ 이라고 해서, 몸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줄은 알았는데, 왜 계속 영화이야기가 나오지? 영화잡지에 연재된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Body, Movie, Body Moving이더라구요. 작가의 이런 농담이 저는 좋아요.

 

 

책이 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모아둔 에세이다 보니, 당연히 몸에 대한, 그리고 그 몸이 관통하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의 몸은 우리의 불가항력을 드러내는 상징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조심스럽게 다루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장이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지만, 몸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38)

 

르윈처럼 뻔뻔하게 말해보자면, 세상에는 시간과 맞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시간을 쪼개서 얻는 것이고, 둘째는 시간을 고의로 잃는 것이다. 아마도 1997년 즈음 야구가 사라지기라도 했다면 나는 불안하고 지루하던 이십대의 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시간을 고의로 잃으면서 다른 시간을 벌었던 것 같다. 야구가 그걸 가능케 했다. (34ff)

 

가끔 예전에 찍은 1초 영상을 볼 때가 있다. 1초의 순간은 선명하다. 영상을 찍은 내가 보이고, 풍경과 사건이 기억난다. 1초의 주면은 흐릿하다. 하루 86400초 중에서 오직 1초만 선택해서 살아남았을 뿐 주변의 시간들은 점점 흐릿해진다. 곧 암흑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기억 역시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선택된 기억들은 끊임없이 재생되고 되풀이되겠지만 주변의 기억들은 서서히 암흑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시간에는 모퉁이가 많아서 우리는 계속 발길을 꺽으며 회전해야 하고, 문득 돌아보면 지나온 길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로라고 말할 수도 없다. 시간에는 애초에 출구 따위도 없다 (165)

 

그리고 신체기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요. 여러 신체부위가 나오지만, 저는 어깨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재미있었습니다. 

인간이 어깨 부위가 생긴 것은 서로 기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인간들이 서로에게 기대게 되면서 어깨가 발달하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무릎과 한께 누군가를 위로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신체부위로 각광받고 있다. 누워야만 기대는 것이 가능한 무릎과는 달리 서서, 앉아서, 등을 대고서, 혹은 또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방을 위로할 수 있는 간편한 부위로 현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73)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몸이 아닌 것, 몸이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죠. 영화 'Her‘ 의 사만다에 관한 이야기와 '이미테이션’에 나오는 엘런 튜링에 관한 작가의 코멘트를 볼까요? 

 

사만다는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으며, 몸안에 갇혀 있지도 않아서 죽음 역시 뛰어넘는다. 말하자면 사만다는 특정한 인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개념’이다. 테오도르는 누군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과 사랑에 빠진 것이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자라난 사랑과 사랑에 빠진 후 그 사랑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운 것이며, 어쩌면 그냥 자신을 계속 사랑한 것이다. (92) 
'우리 인간적으로 그러지는 말자‘ 라고 할 때의 '인간적‘ 이라는 말의 의미도 점점 달라질 것 같다. 우리가 이용하는 외부의 기능까지 '인간적인 것’에 포함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점점 인간성을 잃고 '비인간적인 사물’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휴대전화가 인간스러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휴대전화스러워지는 것일까. 컴퓨터가 인공지능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우리가 컴퓨터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요즘 나는 손바닥에다 NFC기능을 이식하면 버스나 지하철에 탈 때 훨씬 편리할 것 같다는 상상을 자주 하는데, 이것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일까 아니면 내 몸을 '올 인 원‘ 시스템으로 개조하고 싶어하는 컴퓨터의 본성에 가까운 것일까? (243)
엘런 튜링이 학생이었을 때 암호 작성에 대한 책을 설명하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암호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메시지인데, 누구로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 열쇠가 있어야 뜻을 알 수 있지." 앨런 튜링이 대답한다.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것랑 뭐가 다른거지? 사람들은 말할 떄 절대 뜻을 말하지 않잖아.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무슨 뜻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내야 하고. 난 한 번도 대화에 성공한 적이 없어.“ 친구는 „너야말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암호 작성에 대한 책을 엘런에게 건넨다.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암호 같은‘ 모호함이 바탕에 깔려 있으며, 우리가 비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모호함을 잃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244) 

 

그리고 몸에 따라오는 (혹은 분리될 수 없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기억, 고통, 고독감 같은 것들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술의 작동 원리와 가상현실 상자의 작동원리가 다르지 않다. 예술은 거울이 되어 현실을 되비춘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고통스러워 잊으려고 했던 것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늘 거기에 숨어 있던 것들을 보여준다. 진통제나 마약으로는 통증을 이겨낼 수 없다. 우리가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뭐가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65) 
우주를 체험한 후에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고독감 같은 것을 흔히 우주감각 cosmic sense이라 부른다. 역사상 위대한 정신적 스승들이 평범한 인간들과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 우주감각이었다. 위대한 스승들은 우주에 나가지 않고도 무한한 공간을 느끼고, 우주에 나가지 않고도 신이라는 존재를 규정했으며, 무중력을 체험하지 않고도 내가 속하지 않는 세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뒤집어 생각해보자. 기술이 진일보하여 우주여행이 자유로워진다면, 누구나 개인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갈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까.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177ff.)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신체 어딘가가 지워지는 듯한, 옅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얼음을 가득 채운 위스키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자신이 좀더 부드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189) 

 

바디/ 무비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바디 무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대표적인 바디무빙으로는 네.. 춤이 있죠!

(…)춤이란 그런 것이다. 춤이란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같은 스텝으로 같은 리듬을 타며 서로의 몸에 기대는 것이다. 미친듯이 춤을 춰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내 춤을 내가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몸이 생각을 이기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순간에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서로에게 기대어 춤을 추다보면 그런 뜻밖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마냥 즐겁고 기뻐서 자신의 나이 따위, 살아온 이력 따위 잊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126ff)

 

춤…:) 한국에서는 춤출 일이 없었지만, 유학생활 초기에는 종종 학교 파티 (ZHG)에 참석하곤 했는데요.. 근데 이 글에서 나오는 것처런 서로에게 기대어 춤을 춘 적은 없고, 혼자 췄어요.. 맥주잔 들고...눈에서 땀이 나네요..;;; 그리고 '몸이 기억하고 반응한다' 라는 사례도 들어 줍니다.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 (장호연 옮김, 알마, 2012) 에는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의 사례가 하나 나온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그에게 라켓을 보여주며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라켓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테니스 코트에서 그의 손에 라켓을 쥐여주자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았다. 그는 멋지게 테니스를 쳤다. 우리의 몸은 인식보다 강력하며, 기억한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닐 수 있으며, 안다고 해서 영원히 기억할 수 없으며, 우리가 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영원히 모르고 죽을 확률이 클 것이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 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추며 죽고 싶다. 조르바처럼? 아니, 지르박을 추며 (127)

 

나의 몸과 마음에 관한 탐색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상대방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결핍을 눈여겨보지 않을 때 불필요한 질투가 생겨나고, 결핍을 비난하면서 재능을 애써 부시하려 할 때 무시무시한 편견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결핍이 뒤로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를 솔직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의 무언가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특별한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아닌까? (140)

내가 혹시 이런 사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성마다 중력의 영향이 각각 다르므로 만약 외계인이 존재한다 해도 인간들과는 무척 다르게 생겼을 것이다. 어떤 모양일가. 납작한 생선 같은 모양일까 (이름하여 도다리족 외계인?) 질량이 거의 없는 구름 같은 모양일까, 어쩌면 아예 형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이라고 단서를 잠깐 붙이긴 했지만 나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쪽이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지구의 곳곳에 외계인들이 모습을 바꾼 채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외계인들을 찾아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리듬체조를 몹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외계인일 확률이 높다. 리듬체조의 면면을 잘 살펴보면 외계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라는 걸 알 수 있다. (196) 

내가 혹시 외계인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저는 몸치라서 그럴리가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누군가를 웃기려면 먼저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받아적는 장면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대화를 받아 적는다. (256)

 

 

이 글은 에세이지만, 작가가 소설가인지라...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영업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근거가 너무 매력적이라 설득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밝히는 일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고 싶지만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픽션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픽션은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됐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장르가 아니라 더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장르다.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고, 정확히 알 수 없는 걸들에 대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59)

 

모든 김중혁작가의 책이 그렇듯, 이 책도 정말 재미있는 농담같으니까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작가의 말처럼, '새로운 것,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걸, 꿈도 꾸지 못했던 걸, 포기했던 것을 다시 시작해(283)'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곧 다시 찾아올게요!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라, 이때 여행기 글빚을 다 청산하려구요...여행기 다 쓸게요! 그래야 또다른 글빚인 '국비유학 체험기'를 시작할 수 있겠죠?.... 정말 나 보려고 쓰는 글이라 그런지, 논문 쓸 때랑은 비교도 안되게 강한 동기부여와 강한 의지가...ㅠㅠ 학술지 아티클도 이제 시작하려구요... 한 달 동안 맛있는 것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수업준비도 하면서 잘 적응하려고 노력해서 그런지...마음이 많이 안정이 됐어요..

 

안녕!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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