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사의 시선

[서평] 이성희,유경(2018)_엄마의 공책

by Doriee 2019. 4. 21.

 

안녕하세요. 도리입니다. 

 

정든 괴팅엔을 떠나 서울에 돌아온 지도 벌써 4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근황에서도 알려드린 것처럼 저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큰 변화들 중에 하나가 아무래도 한국책이 접근하기가 쉽다는 것! 한국에 들어와서 서울도서관과 제가 강의하는 대학의 도서관에서 여러 책들을 보고 있는데요. 소설이나, 일반 사회과학 서적도 있고, 그리고… 제가 독일에 있을 때부터 정말 보고 싶었던 '가족관련 서적‘ '돌봄과 장기요양 관련 서적’을 차근차근 보고 있습니다. 돌아와서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잘 쓰려고 했는데, 일단은 잘 쓰는 거 말고 그냥 써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취미니까요! 취미를 일처럼 하면 못하게 되더라구요! 일단은 슬슬 하면서 요령이 생기면 더 빨리 쓰면서 잘 쓰게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사실 서평이라고 하지만… 일단은 1) 책의 구성과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2) 저의 짧은 감상, 그리고 3)주요 문장을 발췌/공유(괄호는 페이지번호)하는 방식이 전부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는 책을 읽으면 에버노트에 발췌문과 출처를 기록하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 올리는 서평도 거기다 제 소감만 간단히 적는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한국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기쁜 상태거든요! 한국책에 이렇게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니, 세상이 아름답네요 :) 

 

그럼, 제가 한국에 도착해 여러분께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책은 '엄마의 공책‘ 입니다. 

 

 

엄마의 공책
국내도서
저자 : 이성희,유경
출판 : 궁리출판사 2018.04.01
상세보기

 

뇌에 병이 생겨, 살아온 세월을 모두 잊어버리고 수고하며 애써 걸어온 긴긴 인생길을 이제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저 동정의 눈물만 흘릴 일이 아니다. 치매노인은 병든 몸과 마음으로 우리 앞에서 여전히 최선을 다해 남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우리의 앞날을 가르쳐주는 선배이며 스승임을 기억하자.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 굽은 길과 뻗은 길을 걷고 또 걸어왔고, 이제 쉬면서 한숨 좀 돌리고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 잠시 쉴 곳이 치매라는 의자일 줄이야… (141)

 

 

1) 책의 구성

이 책은 각 장마다 동명의 영화의 한 장면씩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실제 치매환자와 생활화는 과정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환자 당사자나 가족이 경험하는 일을 전형적인 사례 (영화의 장면들)을 통해서 매우 접근하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상황설명 뒤에는 두 저자들의 대담도 실려 있습니다. 두 명의 저자는 치매현장의 전문가이자, 실제로 가족 중에 치매를 앓고 계시/셨던 분이 있으셨고, 그 분들을 돌봐드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이자 당사자의 입장을 가지고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이 환자자신과 가족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짧은 감상

제가 읽었던 다른 치매관련 도서와 비교 했을때, 아주 새롭거나 독창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책이 간결하고 사례중심이라 이해하기가 쉬었습니다. 전문가보다는 (어떠한 이유든)치매에 관심이 생겨나는 보통사람들이 입문서로 읽기에 좋은 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치매관련 대표서적으로는 존스홉킨스의대에서 발간한 '36시간 (The 36-hour day)‘이 대표적이며, 아주아주 유용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번역본은 700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기는 어렵죠. 그런데 ‚엄마의 공책’은 책으로도 금방보고, 아니면 일단 영화로 먼저 보고나서 책을 보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책이 짧다고 해서 내용이 부실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각 장은 처음 가족의 치매사실을 알게 된 후에 시간 순으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따라서 가고 있지만, 저는 책의 내용을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보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그 카테고리는… a)치매/b)치매노인/c)치매노인의 가족/ d)치매노인과 가족에 대한 지원정책 입니다.

 

a) 치매

질병 퇴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기 때문에 치매 역시 언젠가는 과거의 질병으로 기록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140)

 

제약회사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친구가 해준 말이, 20세기까지 병리학의 큰 관심사는 '감염' 즉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세기의 병리학의 가장 큰 화두 중에 하나는 '내부로부터 망가지는 신체' 즉, 알츠하이머 라고 합니다. 이제까지 인간이 극복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치매가 과거의 질병이 될 날이 오겠지만, 21세기 초에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거을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치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구절이죠.

 

또한 어떤 사람이 치매증상을 앓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도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인데, 이에 관해서 도움이 될만한 설명을 줍니다.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의 손예진도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였죠.)

치매환자의 기억장애는 최근 기억부터 없어지고, 반복하게 되고, 기억 전체가 없어지는 세 가지가 특징인데 그렇기 때문에 ‚가끔치매’인거죠. (144)
건망증과 치매, 경도인지장애는 공통적으로 기억력장애를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건망증은 기억력 저하가 급속도로 심해지지는 않고, 치매는 기억력 저하와 함께 성격이 변하거나 문제행동이 나타난다. 정상적인 노화와 치매의 중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는 단순한 건망증과 달리 같은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또한 자신의 학습수준에 비해서도 심할 정도의 기억장애를 보인다. (174) 

 

기억상실과 함께 나타나는 주요한 증상이 지남력상실 (disorientation)과 감정변화 및 기분장애인데, 이것이 노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엄청나게 떨어뜨리는 데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역시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지요.

지남력 장애로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배설물을 스스로 처리하려는 마음으로 손을 대지만 치울 수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자신의 실수를 알고 수치심을 느껴 다른 사람 모르게 얼른 처리하려고 배설물 묻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 다른 빨래랑 뒤범벅이 되기도 한다. 평소 관찰을 통해 환자가 배설행동을 보이면 화장실로 데려간다. 화장실을 알아보고 찾기 쉽도록 커다란 글씨나 밝은 색으로 구별해 표시하고 문을 열어놓는다. 쉽게 벗을 수 있는 옷을 입히고 밤에도 실내등을 켜놓으면 도움이 된다 (69)
치매환자는 심리적으로 혼란스럽고 기분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린다. 감정조절을 잘 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감정실금‘ 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서운한 정도로 넘어갔을 일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서러워서 못 살겠다며 눈물 바람을 한다. 주위에서는 나이 들면서 점점 성질이 괴팍해진다며 속으로 흉을 보거나, 늙으면 아이가 된다더니 괜한 응석에 자식들의 관심을 원하는 어리광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79)
치매로 인해 나타나는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 감정, 행동을 통틀어서 ‚정신행동증상 (BPSD)‘ 이라고 한다. 정신심리행동증상, 행동정신증상, 행동심리증상이라고도 하며 주변행동, 문제행동이라고도 한다. 90%이상의 치매환자에게서 한 가지 이상의 정신행동증상이 나타나는데, 배회, 반복적인 행동, 초조, 안절부절못함, 공격 행동 같은 ‚행동증상’과 우울, 무감동, 불안 망상, 환각, 조증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면서 생기는 다양한 증상), 의욕저하 등의 ‚정신증상‘, 수면장애 섭식장애 (음식 섭취와 관련된 부적절한 행동과 생각), 비정상적인 성적행동 등이 모두 포함된다. (57ff.)

 

환자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수행하는 데 전혀 문제 없는 일도 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 못 알아듣는다. ‚밥은 전기밥솥에 있고, 국은 냄비에 있으니 데우면 되고, 반찬은 냉장고 안에서 김치랑 이것저것 꺼내서 드시라’고 하면 ‚알았다’고 대답은 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서 하루 종일 굶기도 한다. (81)

그게 이렇게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거죠..

몸이 맘대로 안 움직이고 기억력은 떨어졌으니 사고의 위험성이 언제 어느 때고 존재한다. 안전을 위해 치매환자 주변을 정리정돈 해야 한다. 겨울철 아랫목에 깔아 놓은 이불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다 옆으로 쓰러져 다치기도 한다. 환자가 움직이는 공간에 위험요소는 없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 (137)

 

b) 치매 노인의 삶에 대한 이해

이 책이 치매라는 증상/병과 치매노인의 삶을 뒤섞지 않고 잘 분리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책이 참 좋았습니다. 치매라는 것이 워낙 최근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그야말로 공포에 대상인 탓에, 그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환자가 어떤 생각일까를 잘 헤아리고 있네요. 

 

어머니는 상당히 강한 성격에 한마디로 ‚또순이’였어요. 예전에 TV에서 <동물의 세계>같은 것을 볼 때 아무렇지도 않게 보셨는데, 요즘은 몹시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제가 느끼기에는 감정이 아주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다. 여성다움도 좀 더 드러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커져서, 이것이 어머니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가족들이 무조건 치매노인을 싫다고 밀어내면서 부정적인 반응만 보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보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54)

 

맞아요. 그 안에 보물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노인이 남아있는 기능 (잔존기능) 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도 제시합니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텅 비어버리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고 해도 존재 자체가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돼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직 남아있는 기능이 분명 있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기능을 잔존기능이라고 하는데, 치매환자는 이 잔존기능을 사용해서 오늘을 살아간다. 따라서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할 수 있는걸 도와주게 되면 할 수 있는 것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49)

또한, 자립만큼 도움을 받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배워야 한다는 것도요..

아마도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마음오 있으셨겠지요. 자존심일 수도 있지만 평소에 우리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또 도움 받는 일을 좀 편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언제 까지고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요 (89) 

 

c) 케어기버들(가족)들의 한국적인 상황

노인요양(elderly care)는 기본적으로 사람 간의 상호작용 및 관계, 노동 등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에, 노인 뿐만 아니라 그를 돌보는 가족들의 상황에도 정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 책은 노인의 경험 뿐 아니라 가족의 경험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들이 케어기버 당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여기서도 가족들, 특히 주수발자가 겪게되는 어려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주수발자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많은 문헌들에서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주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1) 집에서 돌보는 과정에서 수발자가 느끼는 고립감 2) 과거 노인이 아프기 전에 경험했던 가족사 및 노인과의 관계로 인한 괴로움 3)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의 갈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환자의 병이 아닌 환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분노가 치솟기도 한다. 성격이 강해 외며느리를 몹시도 힘들게 하던 시어머지, 나이 들어서 치매환자가 되니 며느리를 울게 만들었던 과거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처럼 며느리 치맛자락을 놓지 않는다. 아기처럼 구는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측은지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때때로 며느리 가슴 속에는 시어머니한테 당한 세월이 분노의 불길로 치솟아 오르곤 한다. 요즘은 이 분노와 원망의 불길이 시어머니 별수발을 당연하게 여기는 남편 에게로 옮겨가는 중이다. 분노와 원망이 출구를 찾지 못하면 환자는 물론 간호자 자신과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힐 수도 있다. (98)
가족 중 한 사람이 전적으로 맡아 집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경우에는 당연히 외로움과 소외감이 뒤따르게 된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나 소통 없이 환자와 간호자 둘만이 한 공간에 있을 때, 환자는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는 상태이긴 하겠으나 보호자는 고립 속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에 지쳐갈 수밖에 없다. 물리적인 안전 과는 별개로 환자에 대한 심리적인 방임이나 학대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 (99)

 

 

시설입소에 대한 고민

그리고 가족 입장에서 정말 고민되는 것이, 시설(요양원)입소에 대한 결정인데요. 이것은 고령화가 이미 진행중인 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서구는 가족과 상의는 할지라도 자신이 노후에 어떤 세팅으로 생활을 할지는 노인스스로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부모 돌봄을 기본적으로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한국과는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책은 원칙적으로는 집에서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나, 시설이라는 선택지도 필요해 따라 (혹은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당사자(노인)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들 어릴 때 돌보고 책임졌던 것처럼 나이 들어 이제는 자식이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거지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도움을 주고받는 게 당연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무조건 자식한테 의존하거나 응석 부리듯 기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듯이, 꼭 필요한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치매의 진행과 함께 이제 더 이상 혼자 지낼 수 없는 시간이 온다는 점입니다. 가족이든 시설의 전문가들이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때가 반드시 오는데, 도움 받는 것도 훈련을 해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도움을 주는 쪽에서 받는 분들의 자존심을 지켜 드리고 속마음을 잘 헤아려드려야 한다는 것, 잊지 말아야겠지요. (89) 
치매진단을 받자마자 환자의 치매 정도나 현재 상태, 환자 본인의 뜻, 앞으로의 돌봄 계획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무턱대고 시설에 입소시키겠다며 서두루는 자식들. 물론 미리미리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치매하면 곧바로 시설입소를 떠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 집이 마냥 안전하고 환자에게 최선만은 아니듯이, 요양시설이라고 해서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완벽한 만족을 줄 수도 없다. (124) 
치매환자에게 집은 가장 익숙한 장소여서 다른 곳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혼란을 덜 느끼긴 하지만, 꼭 필요한 안전설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바닥과 문턱의 높낮이 차가 있어 발이 걸려 넘어지기 일쑤고, 가스 안전이 늘 염려 되며, 노인 관련 시설에는 벽이나 복도, 화장실에는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안전 손잡이가 대부분의 집에는 없어 불편하다.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가 되어 있지 않아 아무리 혼자 샤워를 할 수 있는 상태라 해도 언제 미끄러져 넘어질 지 알 수 없다. (114)
아무리 집에서 모신다 해도 돌봄과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족 모두 밖에 나가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경우 치매노인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낯선 사람의 출입이 싫다며 요양보호사의 방문 자체를 거부하는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구들은 환자가 혼자 나갔다가 길을 잃고 집을 못 찾아올까봐 밖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도 무조건 집이 최선일까. (115)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자주 잊는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삶의 거처를 완전히 옮긴다는 매우 중요한 선택을 과연 누구의 시각에서 하고 있는가.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골라서 정하고 그리로 옮기는 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이란 말인가. 정작 그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할 분들의 삶의 질은 저만치 치워두고 그저 자의 입장, 나의 체면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이다. (154)

 

시설 입소 이후

시설에 입소하기로 마음먹어다면, 좋은 시설에 모셔야 겠죠. 한국에 요양시설이 설립되기 시작한지가 채 20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모든 시설이 다 마음놓고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듦니다. 시설입소시 체크해야 할 부분과, 입소 이후에 가족이 신경써야 할 부분도 책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휠체어와 같은 복지용구가 많은 요양시설이 좋은 이유도, 어르신들을 그냥 누워만 있게 하지 않으려면 복지용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는 운영자의 운영철하기나 지향하는 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56)
밤이면 섬망 증세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는 아버지가 아들이 아침 출근길에 문안차 병원에 들리기만 하면 하소연을 했다. 밤에 누군가가 자꾸 때리고 아프게 한다고. 아들은 환자의 그렇고 그런 헛소리로 여겨 건성으로 들어 넘겼는데,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알고보니 남자 간병인이 밤에 아무도 없을 떄면 호나자를 몹시 거칠게 대하면서 환자에게 수없이 모욕적인 말을 했던 것. 이를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 아버지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무성의함. 아버지보다는 간병인의 말만 믿으면서 나 몰라라 했던 무책임에 대해서 (97)

 

d) 치매노인가족지원정책 

제가 한국에 떠나 와서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장모, 그러니깐 김정숙 영부인의 어머니도 오랫동안 치매로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2017년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도 ‚치매국가책임제’를 주요공약으로 걸었고, 그 이후 치매센터가 구마다 생기는 등의 변화도 있었죠.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됩니다. 

2017년 9월 18일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다른 중증질환도 많은데 왜 치매만 이렇게 국가가 책임진다고 나서고 여기저기서 자꾸 입에 올리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간단히 말하면 치매는 우선 노인이구 증가와 맞물려 환자가 무섭도록 늘어나고 있고, 현대 의학기술로는 완치방법이 없는데다가, 그 어떤 질병보다 돌봄이 중요해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 또한 예방주사나 위생교육, 혹은 환자격리 같은 방법으로 발병률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72) 

 

가족에 관한 지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개방적인 치매 가족모임‘ 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논문을 쓰기위해 인터뷰이를 구할때 어려웠던 점도, 현재 아픈 노인을 돌보고 있지만 그걸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도 오픈하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하다보면 가족 중 현재 집이나 요양시설에서 자리보전하고 계신 분들이 항상 있더라구요...

치매 수발에 진이 다 빠져서 치매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모진 시집살이에 치매 수발까지, 억울하다 못해 병이 날 지경이니 치매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라. 다른 사람에게 굳이 밝히지 않고 세상 떠나는 날까지 정성껏 돌봐드렸으니 후회는 없고, 부모님이 치매였단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 (180)
치매는 홀로 끙끙 앓거나 병상에 조용히 누워 누군가의 간호를 받다가 세상을 떠나는 병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며 경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라는 병 자체나 치매환자에 대한 것도 물론이지만 돌보는 사람으로서 겪는 감정의 문제라든가 심리적인 상태를 드러내 표현하게 되면, 결코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치매가족들이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게 된다. (120)
데이케어센터에 등록해 다니는 치매환자 가족을 위한 가족 간담회와는 또 달리 지역사회에 좀 더 개방적인 치매가족모임이 있어 누구나 부담없이 참석해 외로움과 소외감에 대해 털어놓고 해소방법을 배우며, 잠시 쉬면서 충전할 수 잇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99)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이 짧아서 금방 읽을 수도 있구요. 주위에 치매로 고생하는, 그러니깐 치매를 앓고 있거나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사람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오랜만에 다른 사람도 보는 독후감을 쓰려니깐 쉽지 않네요.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발췌문에 가깝니다. 뭐 쓰다보면 늘겠죠 :) 또 쓸게요. 제가 최근에 어어어엄청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그럼 안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