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리입니다.
이번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김영하의 2017년 소설집, <오직 두 사람>입니다. 이 책도 윤소라 성우의 오디오북 팟캐스트 '소라소리'에 소개된 작품이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이 소설집의 제목이자, 수록 작품 중 하나인 '오직 두 사람'을 읽어주셨죠. 이때가 아마 2018년 여름 (7월)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이 소설을 롤러 스케이트를 타면서 들어서 그런지 이 작품을 책으로 다시 접했을 때도, 여름의 날씨와 스케이트를 타고 갈때 시원한 바람 (독일은 한여름도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벌써 그립네요.)이 기억납니다. 내용이 별로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각인효과 때문인지, 그런 느낌이 나네요.
이번에는 서평쓰기 전에, 먼저 오디오북 링크를 공유하겠습니다.
오직 두 사람 (1/3) http://www.podbbang.com/ch/9596?e=22320645
오직 두 사람 (2/3) http://www.podbbang.com/ch/9596?e=22328685
오직 두 사람 (3/3) http://www.podbbang.com/ch/9596?e=22337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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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옥수수와 나>는 60쪽 정도의 분량이니 중편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네요. <오직 두 사람>이 워낙 좋은 작품이라 그런지, 나머지 작품은 (매우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그래도 표현하자면) 작품이 주는 감동에 있어서 약간의 편차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소설집 맨 처음에 등장하는 <오직 두 사람> 의 가장 첫번째 문단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제는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어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언니는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스탈린 치하를 피해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난 수십 명 중 하나예요. 뉴욕에서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언니네가 전부예요. 고향에서는 러시아어가 표준어가 되었고, 언니네 언어는 이미 소멸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와요. 하지만 언니네가 정착한 뉴욕은 달라요. 수백 개의 화석언어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어요. 고향에서조차 잊힌 말을 그대로 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뉴욕을 언어의 박물관이라고도 한대요. 하지만 자식들은 영어로만 소통하고 처음에 같이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들은 하나둘 세상을 등져요. 마침내 오직 언니하고 다른 한 명만 남나요. 둘은 어쩌면 전 세계에서 이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들일지도 몰아요. 그러던 어느 날 이 둘, 최후의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해요. 그러곤 수십년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요.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웬 사치품이에요? (11ff, 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 의 줄거리는, 가족 구성원 중에서 '특별한' 애착을 가진 아버지-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비단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연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을 겪게 되는데요.. 인간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거기가 바닥이었어요. 더 내려갈 데가 없는 곳.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몰라요. 와서 울지도 않았어요. 슬픔, 서러움, 억울함 이런 마음보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수렁에 너무 어래 빠져 있어서 수렁인 줄도 몰랐구나 싶었어요. 지금이라도 탈출하자 (30, 오직 두 사람)
많은 가족 구성원 중에도, 친구들 중에도 특히 나랑 잘맞고 그래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죠. '이런 사람이랑 가까워 질 수 있다니, 난 정말 행운아야!' 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 결말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걸 깨닫고 나서도 (그러니깐, 이 관계가 나에게 해로운 관계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거기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죠...
<오직 두사람>을 빼고 다른 작품들 중에는 특별히 인상이 남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아이를 찾습니다>의 경우,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받고나서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네..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느낀 바를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269. 작가의 말)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내용에 관한 코멘트는 이 정도가 다일 것 같고 (너무 성의없어 보이나.ㅠㅠ), 대신, 제가 좋아하는 표현들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먼저.. 설렌다는 감정에 대한 작가의 표현,
인아가 먼저 자기 집으로 들어가면서 무심하게 „안녕, 내일 또 보자“라고 인사를 했는데, 서진은 난생처음으로 설렌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았다. 마음이라는 되직한 크림을 주걱으로 깊게 휘젓는 느낌이었다. (89, 인생의 원점)
마음이라는 되직한 크림을 주걱으로 깊게 휘젓는 느낌... 이분.. 휘핑좀 해보신 분이군요. 저느낌 압니다... 맞아요. 설레는 건 바로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너무 많이 저으면 버터화 되어서 크림을 쓸 수 없게 되니깐 조심해야겠죠!
에, 그리고 또...저는 이제껏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고소득 직장인에 대한 비유 입니다.
“골드만삭스 같은 은행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죠. 아르마니 양복에 흰 셔츠를 입은 뱅커들이 마호가니 탁자에 앉아서 고객들을 상대하는 장면들을 흔히들 상상합니다. 흥, 저희는 그놈들을 솔저라고 부르지요. 가장 밑바닥에서 남의 돈 굴리는 일종의 하급일꾼들입니다. 갤리선의 노잡이라고도 합니다. „ (130. 옥수수와 나)
'갤리선의 노잡이'... 작가가 스스로 생각해 냈는지, 어디에서 들었는 지는 몰라도, 정말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친구가 일주일 전에 잡은 약속을 펑크내면서, 야근하느라 약속에 나갈 수 없고 자신이 '악덕 대기업의 노예'라고 한탄하는 걸 들었는데... 다음에 또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너는 노예가 아니라 '갤리선의 노잡이'라고.. 왜냐면 로마시대의 지중해에 떠다니던 '갤리선의 노잡이'는 자유민이었으니깐. 일은 겁나 힘든 게 맞지만, 노젓는 일이 단순작업 만은 아니라서 노잡이끼리 손발이 안맞으면 노가 꼬여서 배가 메롱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예도 노잡이를 시킬때는 자유민으로 풀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감은 노예보다, '갤리선의 노잡이'가 훨씬 힘들어 보여요..ㅠㅠ
아무튼.. 소설집 전체를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기는 뭣하나, 오직 두 사람은 정말 좋았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거나,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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