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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시선

[서평]김보영 (2015)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by Doriee 2019. 4. 22.

안녕하세요. 도리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소설가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입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Sci-Fi 로맨스 장르인데다, 이 책의 목적이 좀 불순(?)합니다. 출판사 대표가 프로포즈를 위해 김보영 작가(프로포즈 상대가 작가님의 열혈 팬이라고 합니다)께 원고를 의뢰했고, 작가께서 원고청탁을 수락하시어 이 책이 세상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이 책 뒤에 에필로그처럼 나옵니다. 저는 이 책을 윤소라 성우님께서 진행하셨던 (현재는 방송종료) '오디오북 소라소리’라는 팟캐스트를 듣던 중에 알게 되었는데,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책 내용이 너무나 좋아서

한국에 가면 꼭 책을 구해 읽어보고 싶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서울도서관에 책이 있어서 빌렸습니다. 오디오북 소라소리에서도 총 3회차만에 책 전체를 낭독했기 때문에, 책이 두껍지는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참 좋네요. 아기자기한 것이 신혼집에 혼수로 들이기 참 적당한 크기네요ㅎ

 

서울도서관에서 빌린 책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국내도서
저자 : 김보영
출판 : 기적의책 201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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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한의 강을 같은 방향으로 달리면서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어. 이 강은 끝이 없고 노를 저어 돌아갈 수도 없어. (64)

 

책은 총 15장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고, 15장 모두는 남자의 편지입니다. 네 번째 편지내용 중 여자의 편지 전문이 소개되긴 하지만, 15장의 편지 전부는 1인칭 시점 (남자의 독백 및 다른 사람과의 대화들)으로 이루어 집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근미래. 성간결혼식을 위해서 남자주인공은 다른 시간선 (빛의 속도로 가속/감속하는 방식)을 타게 되는데, 2달로 예상된 (지구 시간으로는 4년) 일정이 꼬이고, 그 동안 지구에 대환장파티(?)가 벌어져… 어쩔 수 없이 우주를 떠돌면서, 그야 말로 '시간을 견디는‘ 이야기입니다. 우주물+ 우라시마 효과 에 관한 이야기는 비교적 친숙한 Sci-Fi 소재 인데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 가 있습니다. '우라시마 효과’는 일본의 유명한 설화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자세한 설명은 단어에 나무위키 링크를 달아 놨어요;;) 한국 설화로는 '나무꾼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 신선들이 바둑 두는 걸 구경했더니 도끼자루가 썩었더라…' ‚이런 게 있죠. 

 

그런데 이런 복잡한 이론적 배경은 몰라도, 광속 우주선을 타면 시간선이 꼬여서 자기가 현재 있는 곳과, 목적지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다른 시간선을 가진다). 라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아직은 경험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게 가능하다고 하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굉장히 곤란해 지겠죠. 남자주인공은 결혼식이 예정된 지구로 가다가, 우주선을 잘못 환승하여 도착예정 시간이 3년 지연 됩니다. 거기다 신부도 사정이 생겨 11년 (거기다 남자도 4+3년 지연 되었으니 지구 시간으로는 이미 18년이 흐른 뒤...) 늦게 온답니다. 신부는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항구에 마중이라도 나와 달라고 하면서) 이미 우주선 안에서 11년 동안 동면상태에 들어 갔습니다. 아래의말을 편지에 남기구요.

 

답장을 해줘. 깨어나서 볼 테니까.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든 서운해 하지 않으려 해. 나는 내 선택을 했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을 한 거니까.

 

이런 말을 남기구요. 이게 네 번째 편지에 나오는 말인데, 이 네 번째 편지 이후로는 남자의 편지로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읽고 있다보면 정말 처절합니다. 

 

잠들 때마다 꿈을 꿨어. 지구에 내리는데 당신이 내 친구 한 놈이랑 애 하나 떡 안고서 오는 거야. 그러면서 '편지? 못 받았는데?‘ 하면서 깔깔 웃는 거야. 그리고 친구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가운데 나는 구석에서 혼자 소주나 홀짝거리는 거지 (21) 
우리가 무한의 강을 같은 방향으로 달리면서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어. 이 강은 끝이 없고 노를 저어 돌아갈 수도 없어. (64)

그냥 신부를 만나지 못한 것도 절망적인데, 그냥 온 우주가 난리통(?)이라 엉망진창 와장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세상이 멀쩡한데 신부가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변심해서 항구에 나타나지 '않는 것'보다는, 세상이 혼란해서 '올 수 없는‘ 것이 차라리 견디기 더 나아서 이렇게 설정했나 싶기도 합니다.  

그저 담담했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어. 당신이 갈댓잎 사이에서 나타나기라도 했다면 ‚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나. 이상하니까 집에 갔다가 다시 와.‘ 했을거야 (51)
당신이 지금까지 항해를 하려면 큰 배를 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큰 배를 타고 있다면 당신 마음대로 그 배를 움직일 수 없을 거고. 이 거지 꼬락서니의 남자 하나 만나게 해 주겠다고 이만 한 선박이 항로를 틀지도 않을거야. (64)

환승을 잘못하여 시간선이 꼬이고, 신부도 배편을 잘못타고, 거기다 세상이 난리통이 되니, 남자는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정신을 살짝 놓기도 하지만… 역시 마지막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주는 것도 신부에 대한 기억과 신부가 했던 말들입니다.

당신이 까맣게 변색된 문설주를 쓰다듬으며 말했어. "내가 옆에 있어 주었어야 했는데." 당신이 집이 아니라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어.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내게 말하는 듯했어. 내내 혼자였던 나에게. (47)
당신과 나는 초콜릿 물을 뺄 처럼 머리를 맞대고 땀을 찔찔 흘렸어. "고리가 단단하네. 드라이버가 먼저 부러지면 어쩌지.“ "그럴 수도 있어.“ 내가 말했어. "하지만 그건 일어난 뒤에 생각할래. 미리 생각하면 괜히 두 배로 더 생각하는 거니까.“ (81)

이렇게요. ㅎㅎ 이렇게 우주적 고통(?)을 겪고난 남자는 결국 신부를 만났을까요? 이 책의 목적이 '프로포즈’ 용라는 거,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라는 걸 보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내용이 참 심란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우주 공간을 떠돌며 '시간을 견디는‘ 행위가 유학생활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디펜스용 논문을 올해 1월에 제출했고, 제출 기한을 맞추느라 동지섣달을 포함한 5주간을 사실상 '광인의 상태'로 보내야했습니다. 동짓날 즈음 괴팅엔은 정말 해의 길이가 짧은데다가, 날씨도 정말 너무나 나빠서 해가 1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는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습니다.

그냥 여기를 지구가 아니라 큰 우주 정거장이라고 생각하자. 그래, 아주아주 커서 도시 하나쯤은 그냥 들어앉힐 수 있고, 안에서 이렇게 자전거도 타고 다닐 수 있는 곳. 우주 정거장이니깐 해가 지구에서처럼 안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평온해 지더군요… 제 i Tunes에는 ‚우주노래‘ 라는 새로운 플레이리스트가 생겼습니다. 이 이야기를 옥포동 몽실언니 (저의 히든 수퍼바이저이자 멘탈케어를 위한 수석코치이자 내 영혼의 독서실 총무)가 아주 기뻐하셨어요… 원래 그정도는 미쳐야 논문을 끝낸다면서… (여러분 유학 생활이 이렇게 힘들어요..ㅠ) 

 

이런 미치광이가 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더라도...많은 유학생들이 느끼는 거지만,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들어와 보면, 한국이 정말 많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책에서 나오는 '시간선의 차이로 인한 장소의 분리’의 반대 상황인 '장소의 분리로 인한 시간선의 격차‘ 같은게 나타나는 거죠. 거기다가, 유학생들은 대부분 집-학교(수업,도서관)-집의 루틴을 따르며 소득창출 활동은 커녕 자기 멘탈 케어 하기도 바쁘니.. 어느 순간, 다들 어른이 되었는데 나만 어린아이가 된 기분을 느낍니다. 저도 사실 지금 적응 중이예요. 자극을 최대한 서서히 늘리면서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나려고 하고 있죠.

 

또 하나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이 책이 편지형식으로, 그것도 시간선의 차이로 인해 메시지를 보내는 시점과 받는 시점이 아주아주 차이가 많이 나며, 이것이 수신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책을 덮는 시점까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별의 목소리’에서도 사용되었던 장치죠. 굳이 다른 시간선을 타지 않더라도, 매체의 특성, 당시의 상황과 조건 때문에, 상대방이 전달하려는 바가 나에게 뒤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미 지하철을 탔는데 상대방이 약속을 취소해 버렸거나 (아..ㅆ) 아니면 박사과정 지원메일이 메일서버의 이상으로 1년 뒤에 교수에게 발견(!) 되어, 너 아직도 박사 어플라이 하고있다면 함부르크로 와라... 라고 하거나.. (네.. 둘 다 제가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암튼 많은 경우들이 있지만, 제가 이제까지 살면서 뒤늦게 도착했던 메시지 중에 가장 늦게 도착한 메시지는 10년 뒤에 저에게 도착한 친구의 말입니다. 예전에, 그러니깐 2000년대 중반 '사이좋은 사람들끼리 쓰던 SNS'에 제 친구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저를 보고 남겨준 말이었는데, 그게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죠. 그런데 2015년 이었던가? 이 SNS에서 방명록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해서, 방명록을 갈무리하고자 100만년 만에(지구시간으로는 10년만에;;;)에 사람들이 제가 남긴, 그리고 제가 사람들에게 남긴 방명록을 마지막으로 하나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친구가 남겨준 방명록을 발견 했는데, 읽은 순간 뜨악했습니다. 전혀 기억에 없었거든요?

 

전화.. 신경쓰지마

그냥 살아있나 확인해 본겨

 

<밀리언 달러 베이비> 보니깐 이런 말 나오더라

"너 자신을 보호하라"고... 몸을 사리란 말은 아니겠지 아프지 말어... 할일이 많잖어 연애도 하고

 

아니, 이걸 2015년에 발견하다니...이 말에 저는 -^^ 고마워- 라고 답했더라구요. 정말 이보다 영혼없는 댓글을 쓰기도 힘들텐데요, 제가 정신이 없긴 없었나 봅니다. 아무튼 "너 자신을 보호하라"는 제 유학생활 후반기를 버티고 박사과정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중요한 말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봤구요 (넷플릭스 고마워요!). 매기는 정말 멋진 여자더라구요. 다른 건 몰라도 등근육은 정말 백만불짜리였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말은 저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과 장소로 배달 되었습니다. 이후, 두어 번 그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끝내 하지 못했습니다. 친구 역시 자신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그는 이미 다른 시간선으로 옮겨탄 후, 지금도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세상사의 많은 일들은 '타이밍'에 좌우됩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무한의 강을 같은 방향으로 달리면서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원하지만, 이 강은 끝이 없고 노를 저어 돌아갈 수도 없(64)는 거죠. 다만, 과거 어떤 때,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걱정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김보영작가님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기적의 책, 2015)는 오디오북 소라소리를 통해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책은 책대로 참 좋지만, 낭독 역시 또 그것만의 고유한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낭독은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공유합니다.  꼭 한 번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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